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 게바라 (문단 편집) == 여담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3px-CheHigh.jpg|width=300]] * 체 게바라 하면 딱 떠오르는 이 사진의 이름은 '영웅적 게릴라'(Guerrillero Heroico)이며, [[쿠바]]의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1960년]] [[3월 5일]]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이다. 당시 라 쿠브르호 폭발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집회에서 찍었던 이 사진은 훗날 게바라를 상징하는 절대적인 아이콘으로 부상한다. 그리고 잘생긴 외모 탓에 티셔츠, 타투 등 상업적으로도 엄청나게 이용된다. 자본주의를 배척하던 체 게바라로서는 상당한 아이러니다. * 어린 시절에는 고향 축구팀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엔리케 가르시아]]의 플레이에 매료되어 [[CA 로사리오 센트랄]]의 팬이었고 성장해서는 [[야구]]를 좋아했다고 한다. * 아르헨티나인 답게 [[마테차]]를 즐겨 마신 것으로 유명하다. *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는 명언으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출처불명이며, 볼테르의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처럼 타인의 말이 본인이 한 말처럼 와전된 사례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68혁명의 구호가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으며, 프랑스 일간지 '파르지앵'의 전문기자인 장 코르미에가 쓴 체 게바라 평전에 실린 문구가 이와 관련되었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 체 게바라는 공식적으로 두 번을 결혼했으며 총 6명의 자녀를 낳았다. 현재 그의 유가족들은 부친이 상품화되는 것에 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2012년에 서울대학교로 강연을 온 체 게바라의 딸 알레이다 게바라에 따르면, 체의 가족들이 이탈리아를 방문하였을 때 체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일단의 청년들이 싸인을 부탁했는데 알고보니 그들은 '''[[파시스트]]'''였다고 한다. 체의 이미지가 얼마나 상품화되어버렸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 그래도 알레이다는 체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혁명적인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고 평가했다.] * 쿠바의 특산품이라 할 수 있는 [[시가(담배)|시가]]를 지킨 사람이라고도 한다. 쿠바 혁명 이후 피델 카스트로가 시가를 자본주의의 상징이라며 깡그리 없애려 하자 “시가는 쿠바의 상징”이라고 하며 말렸다고 한다. 그리고 카스트로도 나중에 시가를 피우고 쿠바의 시가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 여담이지만 체가 체포되기 전 몇 명의 동지가 생포당했는데, 프랑스의 철학자 출신 레지 드브레와 화가 출신의 시로 부스토스의 체포 후 행적은 논란이 되었다. 그간 알려진 바로는 드브레는 끝까지 불지 않았고 대신 '''화가 출신'''인 부스토스가 겁에 질려 상세한 게릴라들의 초상화를 그려줬고, 그 때문에 체가 죽었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부스토스의 자서전과 체의 전기 작가들에 의하면 반대로 드브레가 CIA에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한 배신자였고 부스토스는 일부러 3주 동안 거짓된 신분을 내세워 조사에 혼선을 가져다줬을 뿐 아니라 그려준 초상은 일부러 사실대로 수염투성이 얼굴로 그려 알아볼 수가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에우세비오와 칭골로라는 게릴라 대원이 체를 배신하고 체의 은신처로 CIA를 인도했으며, 이것이 직접적인 사망원인이 되었다.] 후일 부스토스는 복잡한 남미의 정치 환경 때문에 30년형 수감 → 좌파 정권 집권으로 석방 → 우파 테러단체의 살해위협에 [[스웨덴]]에 망명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경향신문]], 2013.07.10). * [[대한민국]]의 [[웹툰]]에서는 두 번이나 '''[[최 게바라]]'''라는 이름으로 패러디되었다. [[김진태(만화가)|김진태]]의 만화에서는 채식주의자로 등장하며 [[내추럴 리드미칼 시리즈]]에서는 [[쑈오리 라마]]를 도와주는 해커로 등장한다. 한편 [[오인용]]의 플래시 애니메이션인 [[폭력교실]]에서는 체육교사인 '''체 게바리'''로 패러디되었다. * 365mc병원 지면광고(지하철) 중 [[지방이]]가 체 게바라 코스프레를 한 것이 있다. '''빼 걔봐라'''라는 광고문구가 압권이었다. * [[쿠바 페소|쿠바 3페소]] 액면 도안이 체 게바라로, 지폐와 주화 둘 다 해당한다. * 축구선수 [[에베르 바네가]]가 체 게바라로 패러디된 적이 있다. [[http://www.elmundo.es/elmundo/2010/05/23/valencia/1274607049.html|출처]] 바네가는 게바라와 외모가 꽤나 닮은 걸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아르헨티나|원 국적]]도 같은 나라 사람들이다. * 체 게바라에 일생을 다룬 책으로는 기자 장 코르미에가 쓴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64427|<체 게바라 평전>]]이 유명하다. 책의 저자는 1981년부터 체 게바라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여 14년 간 연구 끝에 1995년 책을 발간하였다. 한편 체 게바라의 동생인 후안 마르틴 게바라와 미국의 언론인 아르멜 뱅상이 함께 쓴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545558|<나의 형, 체 게바라>]]도 읽을 만하다. 그외에 국내 출판사 황매에서 발간한 <체 게바라 자서전>이 있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대부분이 사진 위주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파일:canek2.jpg|height=300]] * 체 게바라의 외손자 '''카넥 산체스 게바라'''(Canek Sanchez Guevara, 1974 ~ 2015)는 쿠바의 전체주의적 성향과 사회 보수주의에 환멸을 느껴서 [[아나키스트]]가 된다. 멕시코에서 유년기를 보낸 카넥은 이후 쿠바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정권이 약속한 고위장교직을 거부하고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쿠바의 현실을 마주하고는 정권이 예술가들과 작가를 탄압하는 방식에 빠르게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본인 또한 야밤의 공연중에 비밀 경찰에 금지된 문화 활동을 한 혐의로 급습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정권을 비판하는 강도높은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게 되자 정권에 의해 쿠바를 떠날 것을 요구받아서 망명길에 오른다. 그는 쿠바 혁명은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을 탄생 시켰을 뿐이며, [[개인숭배|지도자에 대한 종교적 메시아주의]]로 점철된 반민주주의 체제라고 비난했다. 그는 쿠바에서 "다름의 범죄화, 동성애자, 히피, 자유사상가, 노조활동가, 시인에 대한 대규모 박해행위"등에 대하여 역겨움을 느꼈으며, 쿠바 사회는 "사회주의적 부르주아지, 거짓 프롤레타리아"라며 비난했다. 이후 망명지에서 심장 수술의 합병증으로 죽을 때까지 쿠바의 (좌파)자유지상주의 운동에 관여한다.[* [[https://libcom.org/history/che%E2%80%99s-grandson-anarchist]]] * 체 게바라의 [[게릴라]] 이미지 때문인지 가끔 체 게바라를 [[아나키스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체 게바라는 아나키즘과는 전혀 관련없는 [[마오주의]] 성향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다.[* 관련 없는 정도를 떠나서 사회주의 운동 안에서 극적으로 대립하는 양 극단에 있는 이념이다. 쿠바의 아나키스트 신문 Solidaridad Gastronómica는 폐간되기 전 마지막 호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불가능한 개념이며, 절대로 노동계급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오히려 아나키스트들은 쿠바 혁명 이후 숙청되었다. * 체게바라를 처형한 사람은 마리오 테란 살라사르(1942 ~ 2022)이다. 체 게바라를 총살할 당시의 계급은 [[병장]]이었으며 그 뒤로 조용히 30년 더 복무하다가 [[준위]]로 전역하였다. 언론 노출을 피해온 그는 자신이 게바라를 처형한 사람임을 부인한 적도 있었다. 언론 인터뷰에서 "내 생애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한 바 있다.[* [[https://m.yna.co.kr/view/AKR20220311042700087?section=international/all]]] 2007년에는 [[https://en.wikipedia.org/wiki/Operaci%C3%B3n_Milagro|쿠바의 안과 의료 원조 사업]]을 통해 본명을 숨기고 무료로 [[백내장]] 수술을 받기도 했다. * 그의 아들 오마르 페레즈는 시인인데, 한국에도 방문한 적이 있다.[[https://www.news1.kr/articles/?3004688|기사]] * notable people이라는 지역별 유명인을 알려주는 사이트에서[[https://tjukanovt.github.io/notable-people|#]] [[남아메리카]] 전체에서 가장 굵은 굵기로 이름이 나오며, 최소 확대 정도에서도 굵은 글씨로 나온다. 또한 [[리오넬 메시]]와 좌표가 완벽히 똑같아서 메시의 이름을 가리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